이가라시 다이지의 여름에, 바다에 대하여.
※ 스포일러 포함
이가라시 다이지는 달리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더 나았다. 이가라시 다이지에게 여름이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계절, 눈을 감았다가 뜨면 가을이라는 말이 들려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리는 계절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또 그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이가라시 다이지는 여름이라는 그 자체의 계절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바다. 그 바다 하나가 싫어서, 가족들이 여름이면 바다에 가서 몸 한 번 담그는 게 좋지 않겠냐며 이끄는 손이 싫어서, 바다에 갈 때면 다시 한번 죽어버릴 듯한 공포가 연상되는 탓에, 가족들이 제게 관심이 있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잘 분간되지 않던 터라 이가라시 다이지는 끔찍이도 바다를 싫어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바다가 싫다고, 그냥 그렇게 말해도 괜찮기는 하지만 제게 바다에 들어가자며 등 떠미는 계절은 오로지 여름 말고는 없기에. 그 외의 계절에 바다에 갈 때면 단순히 아름답다는 감상 정도가 딸려오는 탓에 이가라시 다이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저는 온전히 바다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아무래도 하루 종일 찌르르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반팔을 입어도, 아무리 시원한 옷을 입어도 해결되지 않는 더위가 싫은 것이라고, 머리가 울리게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단 맛은 아무래도 제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제가 싫어하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오로지 여름이라는 계절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보자면 정말로 이가라시 다이지는 자신이 여름을 싫어하게 된 것만 같은 감정에 어이없게도 웃음을 흘리고나 한다. 어제만 해도 매미의 찌르르 소리 정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는데. 어제만 해도 선풍기 아래에서 맞는 선선한 바람을 좋아했는데. 어제만 해도 엄마가 깜짝선물 정도로 사 왔던 아이스크림이 제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전부 다 제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하루가 지났다고, 제가 싫어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그 사실 하나로.
그런 이유로 이가라시 다이지는 여름이 될 때면 아픈 척을 하기나 했다. 아니, 아파지려고 노력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 표현일 뿐이다.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있는데 얼굴 쪽으로 강하게 틀어놓으면 감기가 들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조금 문제가 있다면 잘 때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추워진다는 것이지만, 아파지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채로 눈을 꾹 감고 잠을 청하기나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라면 안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아니, 확실히 안 좋은 점은 맞았지만 여름만 되면 제게 이득으로 돌아오기에 다행이라고 말 할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제가 몸이 그리 좋지 않은 편도 있기에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놓거나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틀어둔 채 잠을 청하는 것은 이가라시 다이지에게는 여름을, 그러니까 여름 바다를 피할 최고의 방법이었다. 수영을 잘하는 걸 보니 역시 바다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저번에 물에서 나오라고 해도 도통 나오지 않았으니 바다 좋아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니라는 답을 할 필요 없이, 저는 수영을 못한다는 말을, 되도록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왜 몰라주냐는 말을 삼킬 필요 없이 단순히 다음에 함께 가자는 말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때 즈음이었을까, 이가라시 다이지는 왠지 모를 섭섭함을, 그러니까 고요한 곳. 혼자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날 하루하루가, 자신을 내버려두고 다 같이 여행을 간 탓에 휴무라는 말을 보곤 손님도 오지 않고, 사쿠라나 형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아빠가 또 이상한 영상을 찍는 소리가, 엄마가 손님을 받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들이 싫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록 제가 바다를 가고 싶지 않았던 탓에 일부러 피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기에 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남겨지는 건 외로우니까. 제가 아프니 여행을 취소할 수는 없겠느냐는 왠지 모르게 울컥울컥 올라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더 여름이라는 계절이 싫어졌을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취소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저를 두고 가는 게 저에게도, 가족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이날에는 가족 다 같이 여행을 가는 거라며 들떠있었으니 제가 아프다는 그런 작은 이유 하나로 무산되기는 아쉬움이 가득 남아서, 제가 나은 그 바로 다음 날에 가자고 할지도 몰랐고 그때는 정말 어떤 핑계를 대도 빠지기 힘드니까. 그리고, 이미 꽤 큰 돈을 들여서 펜션이며 뭐며 많은 것들을 예약해 두었다는 것 정도는 어렸을 때에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 선뜻 포기하기엔 너무 큰 돈이 낭비됐고, 설령 일부 돌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위약금을 무시하기도 어려웠으니 저를 두고 가는 게 그나마 제일 좋은 방안일 터였다. 그렇기에 가족 그 누구도 제 곁에 남아있어 줄 수 없었다. 애초에 심한 감기거나 독감이면 몰라도 간단히 차가운 바람을 많이 맞아서 몇 번 아프면 나을 감기에 걸린 것 뿐이니까. 그런데 제 몸이 달리 좋지 않아서 열까지 동반되어 버렸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굳이 옆에 남아서 간호라든지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어쩌면 여행을 간 다음 날에 바로 나아 버릴 정도로 정말 간단하고도 단순한 감기였으니까.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외로움에 이가라시 다이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제 방 안에 있는 전신 거울을 바라보기나 한다. 이런 거, 아무래도 필요 없다니까 커가면서 점차 필요할 거라고 꾸역꾸역 이 방에 넣어두었던 건데, 왠지 모르게 열 때문에 볼이 붉게 상기된 걸 이렇게 보고나 있으니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이런 거 필요 없다니까. 엄마도 고집은-…. 이가라시 다이지는 그런 생각이나 하며 거울을 등진 채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나 했다. 마지막에 제 얼굴에 피어있었던 열꽃이 잦아든 채로, 제가 지금 입고 있는 흰색 티와는 반대로 검은색 옷을 빼입고 있는 것을 봤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무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열이 꽤 높아서 제가 헛것을 보나보다, 하고 말이다.
________________
이가라시 다이지는 달리 꿈을 잘 꾸는 편이 아니었다. 잠자리가 불편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잘 때가 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꾸벅, 꾸벅 잠 속으로 빠져들기나 하니까 말이다. 심지어 어디서 잔다고 해도, 만일 그 어디서라는 게 잠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잘 잘 수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때도 당연하게도 꿈을 달리 꾸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가라시 다이지는 꿈도, 더불어서 악몽도 잘 꾸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악몽을 꿨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간단히 웃고 넘길 수 있는 건 악몽을 많이 꾼 사람들이기 마련이다. 문제가 있다면 어린아이들은 악몽을 많이 꿨다고 해도 불구하고 언제나 두려움에 떨지만. 그리고 지금의, 여름이 싫어서 감기나 걸려버린 이가라시 다이지는 어린아이이며, 꿈도, 악몽도 잘 꾸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가라시 다이지는 제 앞에 악몽처럼-악몽이 맞긴 했지만-찾아온 바다라는 존재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도 깊은 물이라는 존재에 문뜩 겁을 먹고 마는 것이었다.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리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도, 사쿠라도, 엄마도, 아빠도. 그렇다고 바다의 끝이 보였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물뿐이었다. 빠져나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빠져나가려고 아무리 팔을 휘저어 보아도 앞으로 몸이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발을 흔들어도 무언가 제 발을 붙들고 있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를 내면 낼 수록, 입을 열면 열 수록 산소가 고갈되는 기분이었다. 숨을 들이켜도 들이켜지지 않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다 가로막혀버린 기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무력감, 여기서 죽는 건가 하는 일말의 공포. 마치, 그때처럼. 이가라시 다이지가 처음으로 바다에 빠져버렸을 때처럼.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더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는 누가 저를 불러줬던 것 같은데,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왜 그런 거에 빠져있냐는 듯한 목소리로. 마치 저를 무시하는 듯한 억양으로 제 이름을 불렀었다. 가족 중에서는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가 바다에 들어오기 전, 봤던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저를 부르는 거란 말인가? 물 때문에 막혀버린 귀속을 뚫고 제 이름을 선명하게 불렀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왜, 어떻게? 저는 지금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 그러니까 웅성거리는, 그 떠드는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에 빠져버렸는데? 어떻게 저를 부르는 그 얄미운 목소리만 들릴 수 있었단 말인가? 이제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 누군가의 기분 나쁜 비웃음마저 들리지 않았으니까. 이가라시 다이지는 그런 생각에 두 눈을 감아버리기나 했다. 어차피 물 때문에 제대로 앞이 보이지도 않았었다. 잠시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기엔 제 눈은 감겨있지 않았던가? 잠시만, 내가. 바다를 따라왔었나? 나는 분명 아파서 집에서, 있었던 것 같은데.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왜, 지금 바다에 있지?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무언가, 이상한데. 이가라시 다이지는 그런 생각과 함께, 검은 색의 일렁임이 제게 천천히 걸어오는 듯한 착각과 함께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여기는 바다인데 어떻게 제게 걸어올 수 있는 거지, 하는 또 다른 궁금증과 함께. 가능하다면 저를 꺼내줄 수 없을까,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 다이지! 일어나 봐! "
-허억. 이가라시 다이지는 숨을 들이키며 눈을 떴다. 어딘가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형이 제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형이 날 부른 건가, 잠시만. 여행은 어떻게 하고 벌써 이렇게 집에 돌아온 건지, 무언가 이상했다. 벌써 온 거야? 그런 제 물음에 많이 아픈 거냐며, 나간 지 족히 3일은 됐을 텐데 무슨 말이냐고 제게 묻는 것을 들을 수나 있었다. 머리에 손을 얹어보니 열이 없었다. 검은색 옷은 이미 식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며칠 동안 씻지 않아서인지 어딘가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잠을 그렇게 오래 잤던가. 분명 방금 눈을 감았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흘러있다니 세상이 제게 거짓말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많이 자버려서 그런 건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머리가 멍했다. 일단은 일어나야겠다 싶은 마음에 몸을 돌리니 또 전신 거울이 보이기나 했다. 검은색 옷에, 얼굴에 피었던 열꽃이 가라앉은 모습. 제가 잠에 들기 전에 봤던 모습과 똑같았다. 잠시만, 내가 자기 전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던가? 애초에 나한테 검은 색 옷이 있긴 했던가? 잠에 들기 전에 봤던 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단 말인가? 무언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잠에 너무 깊게 빠져들었던 탓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바닷속에서, 악몽 속에서 허우적댔던 바람에 자기 전에는 어땠는지 정도는 기억나지 않아서. 이가라시 다이지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기나 하곤 목욕탕으로 걸어가기나 했다. 이상하게 전신 거울을 보기나 할 때면 무언가 제 정신을 뺏겨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악마에게 홀린 것처럼. 거울을 문 앞에 두는 것 뿐만 아니라 문 옆에 두면 행운이 다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었던가. 나중에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만약 그 사실이 진짜라면 정말로 이번엔 거울을 치워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이가라시 다이지는 물에 몸을 담갔다.
________________
이가라시 다이지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 숙주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카게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약했다, 어리석었다, 바보 같았다. 안 좋은 수식언들을 꼬리표로써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 하나는 좋아서. 그런데 또 좋다고 말하기에는 제 형을 향한 질투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어서, 카게로우는 이가라시 다이지가 분명히 제 숙주이지만, 그렇다고 달리 좋아하지 않기나 하였다. 뭐. 꼭 악마가 숙주를 좋아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착하디 착한 천사한테 바라기나 하라지. 뭐, 내면 속에 악마가 아니라 천사를 품고 사는 사람은 없기에 그런 것들은 바래봤자 쓸데없는 것이긴 하지만. 뭐 그런 건 고사하고 처음부터 카게로우가 이가라시 다이지에 대한 평이 이렇게까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지 않았던 게 맞긴 하지만-당연하게도 카게로우는 이가라시 다이지의 악한 마음에서 태어났기에-그래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바보 같다고 할 만한 일이 있다면 바로 이가라시 다이지가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바다에 갔던 날, 그러니까 제가 처음으로 이가라시 다이지의 몸을 빼앗았던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이지가 마지막으로 여름을 좋아했던 날, 바다를 좋아했던 날. 당연하게도 다이지가 바다를 좋아했기에 저는 달리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이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이지의 패션 센스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오히려 다이지가 싫어하는 것들을 제가 좋아하기나 하니 차차 시간이 갈수록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기나 하였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다이지가 바다를 싫어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하지도 못할 거면서 무턱대고 발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 들어갔기 때문에. 어이, 다이지. 학교에서 허구한 날 들려주는 안전 수칙들은 전부 다 까먹기라도 한 거냐? 그런 말을 뱉었지만 다이지의 귀에 들릴 리가 만무했다. 하긴, 제가 다이지가 누구인지, 제가 누구인지 인식하게 됐을 때부터 다이지에게 여러 말을 건네보았지만, 그 싫어하는 잇키에게 여러 저주를 퍼붓기나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기대도 하지 않긴 했다.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지 않는가. 제가 바다를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확실히 위험해 보이는 깊이였고 확실히 위험해 보이는 위치였다.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는 위치. 다이지가 그렇게 믿고 따르는 잇키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쥐가 난다고 해도 아무도 구해줄 수 없지 않은가? 카게로우는 불안한 눈으로 다이지를 쳐다보기나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순수한 표정. 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바보 같은 표정이긴 했다만, 아무래도 그런 건 지금 신경 써서 좋을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때, 이가라시 다이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면서 앞으로 나가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다이지의 발에 쥐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해조류일지 뭐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다이지의 발에 엉켰다. 발을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 보다는 더 얽혀들어 온다는 공포가 다이지의 머릿속에 스며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게 위험하다니까, 바보 같은 놈이. 카게로우는 이를 아득 갈기나 하였다. 여기서 제가 뭘 할 수가 있지? 지금 다이지가 죽으면 저도 죽는다. 숙주가 죽으면 숙주의 내면 안에 있는 악마도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저 또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이지가 죽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제가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사양이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지 않는 바다에서 빠져 죽는 것도 사양이다. 다이지, 너는 바다를 좋아해서 여기에서 빠져 죽어도 아무래도 좋아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그러니까 빨리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라고-
-카게로우는 왠지 모르게 바다가 좋아지는 것만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마치, 다이지가 방금까지만 해도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제가 느끼는 기분이었다. 카게로우는 급히 이가라시 다이지를 쳐다보기나 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 파도 때문에 얼굴이 물 안으로 잠겼다가, 다시 빠져나왔다가 하는 급박한 상황. 숨을 쉴 수 있었지만 숨을 쉬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이 빠지면 물 속에 있을 때 들이마신 짠 물들을 뱉어내기 바빴을 거니까.
" 다이지, 움직이지도 못할 거면 그 몸, 나한테 넘겨. "
카게로우의 의식이 선명하게 의식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이지의 의식은 마치 바다에 빠져버린 것처럼, 그렇게 꺼져 들어가기나 하였다.
제정신을 차리니까 아무래도 발에 얽혀있던 것을 빼기는 쉬웠다. 그냥 몸에 힘을 뺀 채로 물에 온전히 맡기니 저절로 풀어지던 터라,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스치기나 했다. 급박하긴 개뿔이, 그냥 단순히 겁을 먹었던 탓에 급박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어차피 다시 다이지에게 몸을 넘겨줘서 좋을 것도 없고, 평생 이렇게 제가 몸을 차지한 채로 살 생각에 실컷 물놀이나 하고 있었으나 생각해 보니 이 몸으로는 잇키를 죽일 수도, 아직 다이지가 잇키에게 가지고 있는 질투심과 같은 감정들이 적었던 탓에, 잇키에 대한 원망 정도만 있을 뿐 제게 아직 살의에 가까운 감정 같은 것은 없었던 탓에 카게로우는 이 몸을 잠깐이나마 다시 한번 이가라시 다이지에게 돌려주기나 하였다. 다음을 기약하기나 하면서 말이다.
그 후로 카게로우는 바다를 좋아하게 됐지만, 다이지는 바다도, 여름도 전부 싫어하게 된 터라 바다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페닉스였나, 뭐였나에 입대하겠다고 수영까지 배워버린 탓에, 그러니까 그렇게 된 이후로 다시 물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하고 다시 바다와 여름을 좋아하게 된 탓에 카게로우는 찌르르 매미가 시끄로이 울어대는 여름을, 무지막지하게 단 아이스크림을, 그냥 세세한 것 하나하나를 싫어하게 되기나 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꽤 좋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좋기는 커녕 여름만 되면 진절머리가 나니 짜증 났다. 다이지가 어렸을 때는 허구한 날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있던 탓에 짜증 났는데. 이제는 싫어서 짜증이 난다고-... 허. 카게로우는 어이없는 감정에 웃음을 내뱉기나 했다.
________________
" 카게로우, 넌 바다 좋아해? "
뜬금없이 바이스탬프로 저를 분리하고는 처음 한 말이었다. 여름이어서 안 그래도 짜증 났는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내뱉고 있는 다이지를 보자 하니 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바다를 싫어하게 된 지 자그마치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것도 모르고 제게 물어보고 있는 게 어이없었다. 좋아할 리가 있냐? 다이지 네가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런 말이나 해주자 다이지는 알았다는 듯 입을 다물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기나 했다. 왜? 아무리 착한 놈이긴 해도 이런 것 가지고 사과할 애는 아닌데-
쏴아-
다시는 들을 리 없을 줄 알았던 파도 소리가 카게로우의 귀를 강타했다. 아무리 다이지가 바다를 좋아하게 됐어도 데드먼즈니, 기프니 뭐니 하면서 바쁘게 달려온 탓에 그때 이후로 바다에 와 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데이트라도 하자는 건지, 뭔지 밤바다에 저를 데리고 온 게 퍽이나 웃겼다. 잘 생각해 보니 다이지가 밤바다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가 있다면 다이지는 밤바다에 들어가는 것까지를 좋아했지만 시간 상의 문제로 잠시 바라보는 게 다였긴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까지 신고 나온 것을 보아하니 작정하고 바다에 들어갈 생각으로 보였다. 들어갈 거면 혼자 가. 그런 말에 이가라시 다이지는 씁쓸한 웃음을 짓기나 하였다. 정말로 같이 들어가고 싶었나 보지, 웃긴 놈. 네가 좋아한다고 반드시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이가라시 다이지를 바라보기나 했다. 분명 다이지는 바다를 볼 때면, 바다에 들어갈 때면 기쁜 웃음을 짓고는 했다. 모든 게 다 재밌고 또 모든 게 다 좋다는 듯이. 근심 걱정 따위는 하나도 없는 얼굴로, 그러니까, 제가 볼 때는 꽤 바보 같은 얼굴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다이지는? 시간이 없어서 몇 년 동안이나 상상 속에서 해왔던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씁쓸하고 또 울적해 보였다. 설마 제가 안 들어간다고 이런 표정을 보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하, 카게로우는 간단히 웃음을 뱉고는 결국 몸을 일으켜 혼자서 서서히 바다 안으로 몸을 담그고 있는 다이지에게 다가가기나 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밀어 보였다.
얼빠진 얼굴을 하고는 저를 바라보고 있는 다이지의 표정이 우스웠다. 바닷속으로 얼굴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왔는데 공포에 질렸다기 보다는 어딘가 조금은 기뻐 보여서, 그러니까 과거와는 정말로 달라진 것만 같아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렇게 당장이나마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질질 짜기나 했으면서. 지금은 죽겠다는 감상은 커녕 제가 직접 바다에 들어와 준 게 기뻐 보이는 모양새였다. 그런 다이지의 반응 때문인지 왠지 다이지를 빠트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앞섰고, 가만히, 멍하게 웃음이나 짓고 있었던 다이지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듯 저를 끌어당겨 바닷속으로 빠트리기나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도 바닷속으로 얼굴을 넣었다가 뺐는데도 공포보다는 우스움의 감정이 더 커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보다는 이가라시 다이지를 이겨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제가 했다고 너도 당해보라는 심보로 저를 바다에 빠트린 게 어딘가 짜증, 정도의 감정으로 남아서. 카게로우는 그대로 다이지의 위에 올라타기나 했다. 어디 한 번 지금도 저를 바다로 넘어트릴 수 있으면 넘어트려 보라는 듯이. 제 예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비키라고 말하고 있는 다이지를 보아하니 또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오기나 해서, 처음으로, 아니. 두 번째로. 다이지가 바다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카게로우는 바다가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나 했다. 그래서 다이지가 바다를 싫어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다이지 또한 비키라는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은은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제가 기억하는, 바다를 볼 때의 다이지가 짓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게로우는 그날 처음으로, 다이지가 좋아한다고 제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둘이서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나 하였다. 어쩌면 자신은 바다를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다이지는 바다를 좋아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은 어쩌면 지금 이가라시 다이지와 함께 있는 상황이 좋을 지도 몰랐지만, 그건 아무래도 낯부끄러운 말이고 말해봤자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말은 아니기에. 그리고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제 추측에 불과하기에, 카게로우는 단순히 입을 닫은 채로 이가라시 다이지를 응시하기나 했다. 보기 드물게, 이가라시 다이지와 카게로우 둘 다 서로를 마주 본 채로 웃고 있기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