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拝啓, 親愛なる夏の名前へ

 엔딩 이후 시점, 스포일러 포함

  바다를 바라보는 린타로의 눈이 반짝였다. 그 옆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다 료우가는 고개를 돌린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모든 일이 마무리된 이후 소드 오브 로고스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랐다. 이는 마스터 로고스 제도의 폐지 이후 평의원 중 하나로 선출된 신도 린타로의 일이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했다. 검을 드는 시간보다도 서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잉크 냄새가 짙게 남은 집무실의 안에서 남은 서류를 검토하고 도장을 찍은 이후에는 뻐근한 어깨를 위해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며칠 째 제대로 쉬지 못해 조금 굳은 몸에 탄식하듯 신음성의 소리가 나왔다. 노던 베이스에도 이 정도 업무량이라면 서던 베이스는 더 바쁘겠네. 이런 생각이 들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곧 정기 회의가 열릴 시점이니 자신보다도 바쁜 일상을 소화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자신도 게으름 부릴 틈은 없다. 각종 서류가 놓인 책상을 한 번 정돈하고 다시 한 번 펜을 든 순간 개틀라이크 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웃, 료우가 씨?”​

  화면에 찍힌 이름으로 누군지만 겨우 확인한 채로 받아들자 건너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당황한 목소리에도 아랑곳않고 신다이 료우가는 나직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신도 린타로, 하고 이름이 불리고 그 뒤를 잇는 용건은 간단했다. 정기 회의가 열리기 전에 한 번쯤 신다이 가에 방문해주었으면 한다는 것과 일정을 정한다면 그에 맞추겠다는 것.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딱히 거절할만한 이유가 있는 내용도 아니었기에 린타로는 얼떨떨하게 알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에 맞춰 답을 기다리겠다는 만족스러운 음성이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대한 사과를 마지막으로 전화는 끝이었다. 연락이 끊어진 화면을 내려다보며 린타로는 작게 숨을 내쉰다. 아, 이런 점이 정말 그답다고 해야 할까. 싫은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손아귀에 쥔 펜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서 린타로는 몸을 일으킨다. 예상치 못한 일정에 왠지 더는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튿날 린타로는 일정을 정해 료우가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번에도 간결하게 대화를 마쳤다. 조금 웃는 소리가 섞인 듯도 했다.

 

 

 

* * *

 

 

 

  그러고보니 사적인 일로 료우가 씨를 뵙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평소와 같은 제복 차림으로 북 게이트를 건너오면 금방 소드 오브 로고스 바깥의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계절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신다이 가에 오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주변을 어색하게 둘러보자 근처에서 기다리는 료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러 마중까지 나와주시다니, 멋쩍게 그런 말을 붙이자 별다른 대꾸는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안내하듯 앞서 걷는 모습에 옅게 웃음이 나왔다. 린타로는 망설이지 않고 그 뒤를 따른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대로 시국검 카이지를 든 유서 깊은 가문이라는 말이 걸맞을 만큼 신다이 가는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멋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수련장을 겸하고 있는 것인지 제법 넓은 마당을 한참 가로질러 가면 그를 내다볼 수 있는 위치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평소에도 이곳에서 티타임을 즐기시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의자로 이끌린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 두 개와 찻주전자, 그리고 곁들일 디저트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던 거겠지. 정말로 손님 대접을 받는 것만 같아 린타로는 괜스레 목덜미를 쓸고 자신을 위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린타로를 바라보다 료우가는 짧게 숨을 내쉬고 말을 꺼냈다.​

  “긴장하고 있나?”

  “네, 네?”

  “그런 모양이군. 좀 더 편하게 있도록 해.”​

  평의회 집무실도 아니니. 그런 말과 함께 잠깐 부드럽게 어깨가 감싸이는가 싶다가도 순식간에 떨어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한 찰나에 료우가는 앉지 않은 채 능숙하게 손님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내고 있었다. 공기를 타고 묵직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온다. 익숙한 듯 보이는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이전부터도 느끼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언제나 그의 움직임에는 품격이 깃들어 있었다. 이건 오랫동안 마스터 로고스를 보좌하며 길러온 자질일까. 이런 자리에서 너무 분석적으로 구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린타로는 이어지는 생각을 잡을 수 없었다. 내밀어진 잔을 받아들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는 료우가의 표정을 살핀다. 이전보다 확실히 누그러진 분위기였다. 처음 적으로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마주 앉게 되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정말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원래라면 응접실로 데려가는 게 맞겠지만, 한 합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꺼내오는 말이라든지.

  차를 한 모금 넘기고 고개를 들면 시선이 마주친다. 일전 자신의 자질을 시험해보기 위해 대련을 신청했을 때와는 또 분위기가 바뀌어, 지금은 온화한 호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린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수세검 나가레를 챙겨오길 잘했네요. 떼어두고 다닌 적도 없으면서. 이런 농담 같은 말을 주고받는 게 신선했다. 상체를 조금 그의 쪽으로 숙이면 료우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두고 이내 말을 이었다.​

  “신도 린타로, 너를 이곳까지 부른 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료우가 씨?”​

  조금은 갑작스러운 내용으로. 놀란 표정을 지은 린타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료우가는 옅게 웃었다. 그만큼이나 놀랄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아, 그러니까 이런 얼굴을 보여줄 거라곤……. 긴장을 풀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린타로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조금 몸을 굳힌다. 그의 여동생, 신다이 레이카에게는 자주 보여주었던 표정일까. 생경했지만 어색하지는 않은 그 웃는 얼굴에서 자신을 향한 호의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너는 체제 개편 이후 생길 뻔했던 혼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어.”​

  료우가는 찻잔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담담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계속 검사로서만 싸워왔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평의원으로서 신속하고 정확한 일 처리를 보여주었지.”

  “그, 그런 과분한 말씀을……!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보다는 오히려 소피아 님이나 유리 씨가 더 많은 역할을 해주셨고……”

  “함부로 네 성과를 폄하하지 마라, 린타로.”​

  머쓱하게 뒷목을 쓸어내리며 나오는 겸손의 말이 가로막힌다.​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덕분에 소드 오브 로고스도, 나도 큰 도움을 받았어. 단호한 말에 조금 가슴이 술렁였다. 싸움 최전선에 배치되는 노던 베이스 소속으로서 현장의 사정과 실상에 대해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인재는 소드 오브 로고스를 전부 둘러봐도 몇 되지 않을 거다. 이어지는 직설적인 칭찬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겸손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사고를 끌어오는 것이 어려워 제 앞에 놓인 찻잔만 만지작거리자 테이블 건너편의 상대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 모든 상황이 조금 간지럽게 다가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내면의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린타로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느리게 답한다.​

  “료우가 씨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서류 작업은 료우가 씨가 하셨지요. 그에 비하면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무슨 비교를……. 이쪽은 마스터 로고스를 모시던 때부터 정무를 도왔던 몸이다. 그 정도는 해야 균형이 맞지 않겠나?”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핀잔이나 비아냥 따위는 없는 순수한 사실의 나열에 린타로는 다시 할 말을 찾기 위해 차를 홀짝였다. 하긴, 정무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이 그의 속도나 정확성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지. 확실히 그와 업무량을 비교하는 건 조금 오만했을지도. 그런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료우가의 눈빛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차를 대접받으며 긴장하고, 조금 멋쩍어하고. 이래서야 이 자리가 불편한 것처럼 보이지 않나. 그런 마음은 전혀 없는데. 입술을 우물거리자 료우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칭찬은 여기까지 하고.”​

  그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수세검 나가레가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따라 몸을 일으키자 다시 한 번 눈빛이 마주 닿았다.

  그렇구나, 역시 이 사람은,

  검을 손에 쥐면 료우가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흡족한 표정이었다. 시국검 카이지를 꺼내드는 그의 동작은 간결하고 우아했지만 동시에 소드 오브 로고스 최강의 검사다운 패기가 있었다. 예리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자극받은 호승심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는,

  검사다.

  검사로서 검을 맞대는 것만큼 좋은 대화 수단이 있을까. 신도 린타로와 신다이 료우가라는 남자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역시 이 길밖에는 없다. 적대를 넘어선 곳에는 협력이 있었고, 시험으로 이어졌으며, 지금은 호의를 마주한다. 수련장으로 향하는 료우가의 뒤를 따르며 린타로는 고조되는 심장의 박동을 느낀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익숙지 않은 정무에 집중하느라 검이 무뎌지진 않았겠지.”

  “단련을 게을리할 정도로 물러지진 않았다고 할까요.”​

  나가레의 소드 그립을 쥔 손으로부터 상쾌한 긴장감이 전해져 온다. 거리를 두고 마주 선 채 고개를 숙이면 료우가 또한 예를 표했다. 자세를 잡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중단세의 두 사람이 집중을 끌어올린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품을 노리고 검격이 날아들었다.

 

  아, 여전히 날카로운 궤적이다. 뺨을 스칠 것 같은 카이지의 칼날을 피해내고 몸을 물리며 균형을 다시 잡은 후 린타로는 움직임의 흐름을 이용해 나가레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쳐올린다. 도신이 맞물리는 금속 소리가 날카롭게 수련장을 채운다. 공격이 흘려지고 재정비를 위해 다시 간격을 벌리자 일직선으로 쫓아오는 움직임이 무심코 감탄할 만큼 날카로웠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칼날을 세우는 동시에 묵직한 충격이 나가레를 타고 전해진다. 잠깐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간만의 대련에 손끝까지 뜨거운 혈류가 도는 것 같았다. 끌어내진 전력에 감각이 타오른다. 맞닿은 검을 크게 밀쳐낸 이후 닿지 않을 거리까지 거리를 벌려 숨을 고르고서 료우가를 응시한다. 검 너머의 시선은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다. 섣불리 들어가면 아까의 공세가 그대로 이어지겠지. 보폭을 조금 더 넓히며 자세를 낮춘다. 그를 따라 료우가 또한 검신으로 거리를 재고 있다. 짧은 정적이 흐른다.

  이럴 때의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을 린타로는 뒤늦게 깨닫는다. 어떠한 상쾌함마저 있었다. 료우가가 카이지의 축을 옮기는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디딤발에 힘을 준 채 큰 보폭으로 파고들자 다시 한 번 경쾌한 금속음이 들린다. 정직하게 몸통을 노린 일격이 료우가의 방어를 이끌어낸다. 이 정도는 막히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검을 쳐내는 때에 맞춰 팔을 움직인다. 힘이 실린 몸을 회전시키며 머리 위로부터 검을 내리치자 날을 비스듬히 세운 카이지를 타고 나가레가 흘렀다. 금속끼리 긁히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고, 서로의 힘이 실려 움직임을 멈춘 검날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마주하고 있는, 이럴 때의 료우가 또한 웃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싸움 아닌 대련. 전력을 다해 마음을 맞부딪치는 행위. 진심이 담긴 검을 주고받는 일. 린타로는 조금 더 다리에 힘을 주고 상체를 밀어붙인다. 여기서 먼저 검을 떼는 순간이 빈틈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료우가의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그 순간밖에 없다. 힘과 힘이 정면으로 충돌해 팽팽하게 대립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라면. 료우가가 뒷발을 조금 뒤로 물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린타로 또한 다시 간격을 벌릴 준비를 한다. 두 사람의 향하는 방향이 아주 조금 비틀리자 서로의 검이 튕겨나오듯 다시 긁히는 소리를 내며 내리친 방향의 반대로 밀려났다. 지금뿐이다. 이 찰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반동을 흘려보내기 위해 검을 회전시키며 벌린 간격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 한 팔만을 이용해 정면으로 깔끔하게 밀어넣는 움직임에 맞추어 료우가의 카이지가 비어있는 몸통을 노리고 정교한 궤적을 짜맞춘다. 그래, 료우가 씨, 당신 정도의 검사가 아무런 계산도 없이 이런 일격을 허용할 리 없으니까요. 뻗었던 팔을 거둬들이며 비어있던 손으로는 도신의 넓은 면을 밀어 정면으로 공격을 막아낸다. 동시에 풍압과 함께 중량감이 엄습했다. 이 기분 좋은 바람을 신다이 가의 고고한 검사 또한 느끼고 있을 것인가? 검을 쳐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공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로 파고들었고,​

  “여전히 깔끔한 움직임이로군!”

  “말씀, 감사드립니다!”​

  발치의 흙이 패이는 소리가, 검이 다시 한 번 맞부딪친 채 균형을 유지하는 소리가, 이 인분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사명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승패따위 없는 승부가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일임은 처음 알았다. 검사만이 할 수 있는 대화법으로 그가 표현하는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마주하는 눈동자에 온화한 빛이 맴돈다. 검을 거둬들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합을 맞춘 듯 자연스러웠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자 수련장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이 가볍게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신다이 가에 들어서며 느끼던 긴장과 생경함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가슴의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따뜻한 감각이 심장을 기분 좋게 간질이고 있을 뿐이었다.

 

  대련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으면 료우가는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두꺼운 제복의 겉옷을 벗은 채 땀을 식히던 린타로는 잠깐 고민하다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조금 더 예의를 차리기에는 노던 베이스의 기후에 맞추어진 옷이 지나치게 더웠던 탓이다. 갈아입을 옷을 받아든 채 료우가의 집에서 두 번째로 향하는 공간이 욕실이 된다는 건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내부의 바닥을 맨발로 밟으면 더더욱. 곧 사용하게 될 물건들의 위치를 일러준 이후 료우가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응접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은 채로.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린타로는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곱게 개어둘 수 있었다.

  뭔가, 이렇게까지 해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땀과 함께 약간의 나른함을 씻어내는 와중에도 문 바깥의 일이 신경 쓰였다. 자신을 기다리면서 료우가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일부러 찬물을 머리부터 끼얹어도 작은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의 물을 훔쳐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낸 이후엔 젖은 머리칼을 가볍게 털었다. 서늘한 물방울이 작게 튀는 익숙한 감각이 또 새롭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아침에 단단히 고정해두었던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채다. 굳이 다시 넘기지 않아도 괜찮을까. 거울을 보며 린타로는 손으로 빗어 대강의 형태만을 정리했다. 이후에는, 아……. 료우가 씨가 준비해주신 옷을.

  들어 펼쳐보면 무늬 없는 흰색의 단정한 반소매 셔츠와 검은색의 하의. 제복이 아닐 때는 이런 느낌의 옷을 입으시는 걸까. 그러고보면 자신이 료우가에게 제복 이외의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게 당연하듯, 료우가 또한 자신에게 제복 이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적은 없었다. 입은 모습을 보기도 전에 내 쪽이 입어보게 될 줄은. 의식하면 또 애써 진정시켜 둔 심장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뭔가 불경한 생각이라도 해버린 듯한 기분에 린타로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단추를 끌러내 빠르게 상체에 걸쳤다. 예상보다도 꼭 들어맞는 어깨선이었다. 하긴, 료우가 씨와는 체격이 비슷한 편이었던가. 거울 앞에 선 채 단추를 잠그고 칼라를 정리한다. 나쁘지 않은 모양새다. 하의를 마저 입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본 자신의 모습은, 어쩐지 소드 오브 로고스의 검사가 아닌 단순한 한 명의 호모 사피엔스인 것만 같았다.

  이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는 아니지만.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하는 순간 낯선 향이 코끝을 스쳤다. 물기 어린 공기 속에서 맡기엔 아주 옅은. 동시에 바로 료우가의 향임을 알 수 있었다. 그 향을 다시 한 번 좇듯 무의식적으로 옷깃에 코를 가져다 대면 조금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불쾌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그야말로 신다이 료우가다운…….

  저도 모르게 놀라 고개를 들자 그 자리에는 여전히 거울이 있었다. 뒤늦게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 무슨, 무슨 생각으로 나는 그런 짓을. 이런 짓은 옷을 빌려주신 료우가 씨에게는 큰 실례일 텐데. 거울에 비친 얼굴은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물들어, 귀끝이 붉어져 있었다. 들을 이는 없을 테지만 굳이 자기 변호를 덧붙이자면, 정말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아니, 무의식적이라고 해도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까, 정말로 좋은 향이 나서……. 무슨 말을 붙여도 이상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술을 꾹 깨문 채로 괜히 이마를 덮은 앞머리만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일에는 제법 용기가 필요했다.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아직 촉촉한 감이 있는 피부에 들러붙는 공기가 서늘했다.

 

  응접실로 향하는 걸음은 유독 느리게 느껴졌다. 단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실제로 자신이 걸음을 늦추고 있는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방금 전에 있었던 실수를 료우가가 알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린타로는 쉽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긴장할 일은 아닐 텐데. 모서리를 돌기 전 짧게 호흡을 고르고 걸어나가면 앞에 테이블이 놓인 소파에 료우가는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차림으로.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가 그러한 모습, 그러니까, 깔끔하게 다림질 된 검은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린 사복의 차림으로 있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대련을 하면서 땀을 흘린 건 자신뿐만이 아니니까. 자신에게 내어준 욕실은 손님용이라고 했으니 집의 주인이 사용할 다른 곳도 있으리라는 사실 또한 충분히 유추 가능한 범위였다. 복장도, 애초에 신다이 료우가 본인의 옷을 꺼내 입은 것일테니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린타로는 어쩐지 묘한 기분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그의 건너편에 있는 소파에 앉는다.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현재 입은 것보다도 정갈한 느낌의 옷은 그의 분위기에 정말로 꼭 들어맞았다. 왠지 어른의 옷을 빌려입은 어린이 같은 기분이 되어 입술을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

  “응?”

  “여러가지로, 정말 감사합니다. 옷도 빌려주시고…….”

멋쩍게 말을 꺼내자 린타로를 한 차례 살펴 본 료우가가 잔잔히 웃었다.

  “잘 어울리는군.”

  “……네?”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 되물었지만 료우가가 다시 말해줄 일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채였다. 잘 어울린다니. 괜히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입힐 옷을 골라보았을 료우가를 떠올려 본다. 어떤 기준으로 골라서 건네주셨을까.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자세를 조금 고쳐 앉으면 훗, 하고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서툰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아차리고 계시겠지. 그럼 굳이 더 굳어 있을 필요는…….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아 뒤늦게 곁눈질을 한 번 한다. 그제야 저택에 어울리는 높은 층고나 자연광이 들어오는 큰 창 같은 걸 살필 수 있었다. 좋은 분위기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신다이 료우가의 모습까지도. 여름 오후의 햇빛이 옅게 걸쳐진 그의 얼굴엔 품위가 있다. 기품이 있다. 지금의 자신은 가질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그 얼굴을 자신도 모르게 들여다본다.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러고보니 린타로, 여름 휴가는 다녀왔나?”

  “……휴가요?”

  소드 오브 로고스에 그런 제도가 있었던가.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은 린타로의 반응을 료우가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추측대로 린타로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 소드 오브 로고스의 검사로서 길러진 린타로에게 마음 편히 쉬는 날은 존재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이든 검이나 책 둘 중 하나는 손에 쥐고 있는 나날이었다. 메기도와의 전투가 마무리되고 카미야마 토우마가 원더 월드에서 돌아온 이후 하루 정도 노던 베이스를 여름 분위기로 꾸민 채 쉬는 날을 가졌지만 그건 휴가라기보단 여흥에 가까웠다. 그날은 또, 료우가 씨가 대련을 신청하셨고, 다른 일도 생겼으니 쉬었다고만 볼 수는 없겠지. 평의원에 등극한 뒤로는 또 서류의 나날이었으니 시간을 낼 수 있었을 리 없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 처지였다. 그마저도 그가 이 자리에 불러내지 않았다면 없을 휴일이었다.

  “저는 없습니다만, 료우가 씨는……?”

  “그런가.”

  그리고 그건 료우가 씨도 마찬가지일까? 부러 휴일을 만든 채 자신을 불러주었던 것일까?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자 료우가가 몸을 일으켰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시선에 고개를 들자 그가 가벼이 턱짓했다. 따라 일어나라는 몸짓임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린타로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어디론가 앞서 걸어나가기 시작해 어리둥절한 채로 그 뒤를 따른다.

  “이쪽도 요 몇 년 간은 그럴 틈이 없었어. 하루 정도는 더 시간이 있을 테지. 그렇다면 어울려줬으면 한다.”

  “마, 말씀은 감사하지만 남은 서류가…….”

  “그 일이라면 이미 소피아와 유리에게 전달해두었다. 그들도 흔쾌히 동의해주었어.”

  “네?! 소, 소, 소피아 님이랑 유리 씨가요?”

  갑자기 튀어나오는 익숙한 이름에 펄쩍 뛰듯 놀라도 료우가는 동요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특히 소피아는 아주 적극적이더군. 오히려 ‘블레이즈를 위해서라면!’하고 기뻐하던데.”

  “그런……”

  대체 언제부터 그가 이런 일을 꾸민 것인지, 인지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자신을 위해 소피아와 유리에게 먼저 협상을 해두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보단 자신에게 먼저 설명하는 쪽이 간편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린타로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먼저 ‘휴가’라는 말을 꺼냈다면 아직은 그런 것을 즐길 시기가 아니라며 거절했으리라는 사실을. 이러니까 이런 식으로 불러내신 거겠지. 퇴로가 닫힌 배려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싫, 지는 않지만…….

 

 

 

* * *

 

 

 

  확실히 휴가를 위해서 불러낸 방법치고는 거칠었을지도 모른다.

  신도 린타로가 모르는 물밑에서 신다이 료우가는 많은 작업을 해 둔 상태였다. 그가 알려준 일정에 맞추어 호텔을 잡고, 집 뒤편에는 택시를 대기시켰으며, 필요한 짐은 미리 싸두는 식으로. 그가 언제나 성검의 소지를 잊지 않는 건 계획에 있어 좋은 일이었다. 대련이라는 말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고, 굳이 땀 흘린 몸을 씻게 하면 옷을 자신의 것으로 갈아입힐 수 있었으니까. 소드 오브 로고스의 제복을 걸친 채로 휴가지에 데려갈 수는 없지 않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택시에 올라타 자신의 곁에 앉은 린타로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료우가는 미리 목적지로 지정해 둔 곳을 이야기한다. 기사는 아무런 말 없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체크메이트. 이동 내내 린타로는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을 바라보는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억지로 끌고 나온 것 같은 모습에 약간의 미안함이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반성이나 후회 따위는 없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신도 린타로라는 인간은 완고히 쉬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이건 자신만의 의견이 아니라 린타로라는 이를 아는 주변인물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잡아 둔 호텔의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서 료우가는 아직도 이 장소가 믿기지 않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동행인을 바라보다 짧게 숨을 내쉰다.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린타로는 귀를 조금 붉히며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들떠 버렸습니다…….”

  “별 일도 아닌데 일일이 사과하기는.”

  이런 모습을 보면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만 얽매이기엔 지나치게 어리다. 좀 더 세상을 맛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의 나이가 자신의 여동생 레이카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쭉 마음에 품게 된 묘한 의무감이었다. 보폭을 맞춰 걸으며 느리게 건물의 바깥으로 이끈다. 금방 바닷가가 보이는 위치가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나가면 해변이 나오겠지. 조직에서만 자라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은 그에게 이런 기억은 있을까. 어느 쪽이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묵묵히 걸었다. 해변에 들어서면 다른 바닥과는 완연히 다른 재질이 발을 잡아끈다. 이런 감각이 어색한 듯 린타로는 자꾸만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소금기 섞인 바람이 흐트러트리는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넘겨 정리하며 료우가는 굳이 걸음을 재촉하지 않은 채로 곁에 선다. 시선이 거의 내려가지 않는 위치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보고 있자면 소피아가 그를 부탁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료우가 씨는 바다를 좋아하십니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웃는 모습은 순수하고 무구했다. 아, 혹시 오션 히스토리를 사용하시는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호오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 어깨를 으쓱하면 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지요. 크게 관계는 없겠죠…….

  “저는, 바다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기쁨이 담긴 목소리. 이렇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은 그의 장점.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바다를 향해 걷는다. 오후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으므로 바다의 빛깔도 서서히 변해 가고 있었다. 일정한 파동으로 밀려오고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자신도 싫어하지 않았다.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린타로를 이곳에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걷어올린 셔츠의 소매를 정돈하며 료우가는 문득 일전의 대련을 떠올린다. 그의 그릇을 시험해 보기 위해 청했던, 시합에 가까운 행위를.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하면서도 진지하게 검을 맞대주었던 모습은 훌륭한 한 사람의 검사였다. 이 남자라면 마스터 로고스의 자리를 맡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신도 린타로.”

  “네?”

  그것이야말로 옳은 방식이라고 믿었다.

  “마스터 로고스의 자리에 앉는 게 너였다면 나는 기꺼이 그 보좌를 받아들였을 테다.”

  “마,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료우가 씨, 어째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지만 그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이전의 마스터 로고스가 벌인 일을, 조직이 분열되는 그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방법을. 대대로 마스터 로고스를 섬겨 온 신다이 가의 역할은 여기서 끊어지겠지만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미래. 자신이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방안에 끓어오른 흥분을 잊을 수 없었다. 이 남자라면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건 신도 린타로, 그가 처음이었다. 그때의 린타로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을 번갈아 생각해 본다. 감정이 흐트러지는 것은 검사로선 좋지 않은 모습이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자신도 조금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놀람의 빛을 띤 린타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 또한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적당히 흘려 보내라.”

  “아하하, 흘려 보내라니요.”

  눈앞의 그가 웃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붉어진 귀를 보았기 때문에. 헛기침을 한 이후 료우가는 바다의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흰 포말이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할 위치는 아니겠지만 오늘의 휴가는 포상이라고 생각해주면 기쁘겠군.”

  “……네, 달게 받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로 기쁩니다.”

  달라진 료우가 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돌아오는 말에는 굳이 답을 하지 않은 채로, 물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며 방향을 돌린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았는데요? 내가 호텔에 맡긴 짐은 뭐라고 생각하지? 그래도 료우가 씨의 옷을 더럽히는 건……. 말을 돌릴 때 꺼낸 말이 실질적으로 허락의 의미일텐데도 그런 걱정을 하는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블레이즈에게 좀 더 세상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소피아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상한 부탁을 한다는 감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필요는 흥미로 뒤바뀌고 호감으로 이어진다. 태초의 육상 생물은 바다로부터 왔다고 하죠.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을 좀 더 보고 싶어지는 건 어디서부터 발로한 마음인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쪽이 업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만으로는 반짝이는 그 눈을 더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을 이어나가는 동안 한참을 망설이던 린타로는 조심스레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바지의 밑단이 겨우 젖는 위치임에도 즐거워 보였다. 물이 생각보다 차갑습니다! 료우가 씨는 들어오지 않으시나요? 천진한 음성이 귀를 간지럽힌다. 그 목소리를 따라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또 하나 해보기로 한다. 맨발에 닿는 모래의 촉감을 마지막으로 느껴 본 건 또 어떤 옛날의 일이었던가. 발의 빈틈을 파고드는 감촉이 어색했다. 젖은 모래가 발바닥에 달라붙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로 린타로의 곁을 향해 걷는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발을 씻어야겠군. 이런 해변이라면 나가는 길목에 하나쯤 발을 씻는 곳이 있을 테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여름이란 건 좋네요…….”

  그런 말을 하며 웃음을 흘리는 린타로를 좀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주홍빛으로 물드는 하늘의 색이 그를 덮는 모습을. 오늘 밤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게 될 그와는 또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어떠한 기대감이 료우가의 심장을 부드럽게 침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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