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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부자가 냉라면을 먹는 이야기.

 스포일러 포함

 

 

 

 

 


냉라면 레시피

1. 면을 5분 삶는다. 

2. 면이 익을 동안 라면 스프, 식초 1스푼, 간장 2스푼, 설탕 1스푼, 뜨거운 물 3스푼. 그릇에 넣고 잘 섞은 뒤 찬물 한 컵을 넣는다.

3. 얼음을 담가서 시원하게 만들어 두고.

4. 면이 다 익으면 냉수로 마찰 시켜 헹구고 물기를 뺀 후.

5. 미리 만들었던 육수에 넣은 뒤.

6. 그 위에 좋아하는 고명을 얹어 먹으면 끝.

완성이다. 인기 좋은 여름 음식. 어때, 쉽고 간단하지? 하지만 그건 일반인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 즉, '신'에게는. 그것도 '신' '단 쿠로토'에게는 포함되지 않는다. 본래 신이란 범인들과 다른 길을 걷고, 숨을 쉬거나 웃는 폼조차 예사롭지 않은 법이다. 진실이 어쨌거나 단 쿠로토의 신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상냥함을 표방하고 뒤에서는 음흉한 짓을 꾸미는 사장이나. 생명을 관리하는 심판자. 그 둘의 적절한 혼합이 그의 신이다.

신의 재능에 불가능이란 없다. 이유는 차차 하고 그는 냉라면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하나. 신은 인간의 법칙을 따르는 법이 없지. 그는 요리 시작과 동시에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찢었다. 신의 손길이 닿으면 오븐에 넣은 신발조차 미슐랭 3스타가 될 테니까. 하는 자신감으로 먼저 끓는 물에 면을 통으로 넣었다. 펄펄 끓는 물이 곧 다가올 위험을 예고했지만, 무시하고 냄비 뚜껑을 닫았다. 다음! 뜨거운 물에 라면 스프를 녹이고..... 뭐였지? 대충 눈앞의 향신료를 때려 넣었다. 간장, 설탕, 소금, 식초. 각종 소스가 한데 뒤섞여 알싸한 향을 낸다. 누군가 말했지. 요리에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무슨 마음을 첨가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이 요리가 향하는 대상이 그가 끔찍이도 증오하던 아버지니까. 

증오하던 사람을 위해 구태여 레시피를 찾고, 손에 댄 적도 없던 요리를 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설명해도 역설된다. 지금도. 그는 지하에 아버지를 묶어놨다. 살려낸 이유는 명확하지만, 어째서 아직 묶어둔 채 있는지. 미지수다. 제 행동에 명확한 원인이 있음에는 분명하다. 신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니까. 연구자도 아닌 주제라 굳이 출처를 밝혀내고 싶진 않다. 그의 태생은 개발자이고. 원인을 몰라도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된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잘 살아왔다. 너무 잘 살아 문제가 됐지만.

아, 잡생각을 끝내는 건 저 냄비 물 넘치는 소리. 뚜껑을 열었더니 부글부글 끓던 거품이 사그라든다. 면을 체에 걸러 쏟아지는 냉수에 식혔다. 물기를 빼, 만들어둔 육수에 넣는다. 냉라면인데 역시 뜨거운 건 이상해서 얼음을 넣었더니 금방 시원해진다. 삶은 달걀과 오이를 썰어 위에 얹었고. 대충 했으나 폼은 그럴싸하다. 이것이 신의 재능. 쿠로토는 쟁반에 요리를 얹은 뒤 지하로 향했다.

...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차가운 콘크리트 밟는 소리가 벽을 뚫고 전달되면, 냉방시설 없는 지하의 여름이라 땀에 절어 축축이 젖어있는. 꼴사납기 그지없는 몰골의 아버지가 0과 1에 묶여 여길 올려본다. 겐무 코퍼레이션의 전 사장 단 마사무네가 고작 저런 모습이라니. 다시 살려낸 아버지의 분노에 찬 시선은 그 아들을 향한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지?"

"하하하. 축복으로 생각해라. 신이 널 위해 하사한 음식이다. 인간의 몸으로 부활시켰으니, 식사는 불가피하겠지. 꽤 굶었을테니까."

메마른 목소리만 들어도 그는 지쳤다고, 아들은 알 수 있다. 쟁반에 들린 냉라면을 마사무네의 코 앞에 들이밀었다. 식초와 간장, 소금이 섞인 냄새가 난다. 그런 음식 따위 먹고 싶을 리 없다. 마사무네는 인상을 구긴다.

 

"이런 걸 누가 입에 댄단 말이냐."

"허, 감히 신의 하사품을 거절하는가?" 

쿠로토의 인상도 덩달아 구겨진다. 손을 거두지 않고, 먹지 않는다면 강제로 입을 벌려서라도 들이밀 작정이다. 뻔하지. 마사무네는 속을 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아는 남자니까. 언제나 제멋대로, 전에는 생명조차 창조하는 신이라며 참회하라 아득바득 소리를 질렀는데. 솔직히 제 알 바는 아닌 이야기지만, 말 한 마디. 목소리의 높낮이에서 그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알 수 있다. 재능을 이용한 것에 대한 사과? 웃기고 있군. 넌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다. 그래서 사쿠라코도 소멸이 아닌, 그 순리대로 죽어 제로데이도 일어나지 말았어야 맞다.

세계의 멸망. 과거의 대학살. 그건 그거고. 지금 마사무네의 앞에 있는 건 냉라면이다. 이걸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강제 시식을 기다릴지. 한 가지 확실한 것, 저 정신 나간 음식은 절대 먹고 싶지 않다. 거부하면 먹게 되는 아이러니. 일단 고개를 기울여 국물을 마시는 척만 했다. 코끝이 찬 얼음에 닿는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실 하나, 신 호소인은 속을 생각이 없다. 친히 쟁반을 든 채 정말 그가 음식을 입에 넣는지 내려보고 있었고. 시늉의 최후는 처벌이다. 쿠로토는 순식간에 대접을 기울였다. 육수가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가자, 그는 캑캑. 게워 내려는 욕구가 크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액체가 숨을 막자 호흡을 위해 삼켜냈다.

"웃기지 마라! 이런 맛....!"

입을 다물었다. 놀랍게도 안에서 맴돌던 맛은 꽤 괜찮았기에. 그렇다고 맛있군, 요리 실력이 퍽 좋구나,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지금도 봐. 쿠로토는 의기양양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비웃음을 띄고 있다. 역시 맛있지? 말하는 듯이. 저 얼굴에 대고 칭찬을 하자니 내킬 리 없지.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마른 목에 음식이 들어가니 배가 고파졌다. 그런 아버지를 내려보자, 쿠로토는 기분이 좋다.

 

어쩌면 이건 복수다. 작고 재밌는 복수. 과거의 여름. 마사무네는 자기 아들에게 냉라면을 만들어준 적 있다. 대개 아버지란 아무리 괴팍하더라도 주말의 아들에게 라면 정도는 끓여주는 관용을 가진 법이다. 너무나 과거의 일이라 마사무네는 확실히 잊었지만. 쿠로토는 기억하고 있다. 여름. 아버지와의 추억. 외로움을 깨닫지도 못하는 멍청한 신은 기억력이 좋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왔기에, 그 신이 있을 자리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의 냉라면을 친히 입에 처넣어준 것이다. 비록 많은 게 바뀌었고, 세상은 곧 위태로워 누군가는 신의 권능을 갖겠지만. 

그건 그거고. 세상이 멸망해도 여름은 다시 오며, 돌고 돌아 슬플 정도로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끓인 냉라면은 맛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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